세비야 대성당 콜럼버스

세비야 대성당을 방문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무덤을 보기 위해서다. 1492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 위대한 탐험가의 유해가 세비야에 안치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도시의 역사적 중요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콜럼버스의 무덤을 둘러싼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다.
떠돌이 삶, 떠돌이 유해
콜럼버스는 살아생전에도 여러 나라를 떠돌았지만, 죽은 후에도 그의 유해는 끊임없이 이동했다. 1506년 스페인 바야돌리드에서 사망한 콜럼버스는 처음에는 세비야에 매장되었다가, 1542년 그의 아들과 함께 신대륙인 도미니카 공화국의 산토도밍고로 이장되었다.
그런데 1795년 스페인이 히스파니올라 섬을 프랑스에 양도하면서 유해는 다시 쿠바 아바나로 옮겨졌고, 1898년 미서전쟁 후 스페인이 쿠바를 잃게 되자 마침내 1899년 세비야로 돌아왔다. 400년 만의 귀향이었다.
진위 논란과 DNA 검사
하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1877년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콜럼버스의 것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유해가 발견된 것이다. 이로 인해 진짜 콜럼버스의 유해가 어디에 있는지를 놓고 스페인과 도미니카 공화국 사이에 논란이 벌어졌다.

2003년 스페인 정부는 이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세비야에 있는 유해의 DNA 검사를 실시했다. 검사 결과 세비야에 있는 유해가 콜럼버스의 직계 후손들과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도미니카 공화국은 여전히 자국에 진짜 유해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네 왕국의 헌사
현재 세비야 대성당에 있는 콜럼버스의 무덤은 1902년에 조성된 것으로,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무덤은 네 명의 인물이 관을 떠받치고 있는 형태로 제작되었는데, 이들은 각각 카스티야, 레온, 아라곤, 나바라 왕국을 상징한다.
이는 콜럼버스의 탐험이 개별 왕국의 사업이 아니라 통합된 스페인 전체의 업적임을 강조하는 의미다. 또한 네 왕국이 신대륙 발견의 영웅을 영원히 받들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관 아래 숨겨진 상징
흥미롭게도 콜럮버스의 관은 땅에 직접 닿지 않게 설계되었다. 이는 콜럼버스가 생전에 “스페인 땅이 자신을 배신했다”며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고 한 말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실제로 콜럼버스는 말년에 스페인 왕실로부터 냉대를 받았고, 신대륙 총독직에서도 해임되는 등 불우한 시절을 보냈다. 그런 그의 한을 달래기 위해 후세 사람들이 이런 배려를 한 것일 수도 있다.
스페인 제국의 영광과 몰락
콜럼버스의 무덤은 단순히 한 개인의 안식처가 아니라 스페인 제국 전체의 역사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16세기 스페인은 콜럼버스의 발견 덕분에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식민지를 잃어갔다.
콜럼버스의 유해가 신대륙에서 쿠바로,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온 과정은 스페인 제국의 축소 과정과 정확히 일치한다. 어떤 면에서 콜럼버스는 죽어서도 스페인 제국의 흥망성쇠를 온몸으로 체험한 셈이다.
여전한 논란, 지속되는 관심
오늘날에도 콜럼버스에 대한 평가는 복잡하다. 일부에서는 여전히 위대한 탐험가로 기리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에 대한 학살과 착취의 원흉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이런 상반된 평가는 콜럼버스라는 인물이 갖는 역사적 복잡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콜럼버스의 항해가 인류 역사를 완전히 바꿔놓았다는 점이다. 세비야 대성당에서 그의 무덤을 바라보며 500년 전 그 항해가 가져온 거대한 변화를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